반디가 있는 일상
반디가 우리 집에 온 것은 2020년 9월, 코로나가 한참 심하던 시절이었다.
생각해 보니 반디를 집으로 데려오기 전까지 반디는 내가 마스크를 쓴 모습만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반려인과 함께 살게 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반디라는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여러 후보가 있었다. 흔한 이름보다는, 부를 때마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반딧불처럼 볼 때마다 번뜩이는 생각을 나게 해주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반디가 되었다.
반디를 처음 보았을 때, 그러니까 반디가 생후 3개월쯤 되었을 때, 솔직히 반디가 정말 웰시코기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웠다. 품에 안고 있는 순간에도 조금 난감했다. 만약 반디가 정말 웰시코기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웰시코기를 키우고 싶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친근하고 애교가 많은 견종이라는 점이 좋았다. 똑똑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다. 영국 왕실에서 길렀던 견종이라는 점도 괜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이유들은 반디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반디는 웰시코기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반디라서 좋은 존재가 되었다.
반디는 알람 시계 역할을 한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이렇게 큰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답은 힘들다. 하지만 반디가 주는 도움을 생각하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꽤 작아진다.
아침마다 반디 특유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일어나서 밥을 주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가끔은 반디가 조용한데도 내가 먼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날이 있다. 반디를 키우기 시작한 뒤로 한동안은 아침 산책도 열심히 했다. 물론 지금은 그 역할을 아내에게 많이 넘겨주었지만.
반디를 처음 키우게 된 곳은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부천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과 부천의 접점에 가까운 곳이었다. 녹지가 많아서 사람들을 초대하면 다들 “서울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하고 놀라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7년 넘게 살았고, 그중 5년은 반디와 함께 보냈다. 아파트에 살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캠핑장이나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숲내음이 있었고,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하늘을 넓게 볼 수 있었다. 반디와 함께 지내기에는 참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반디와 서울 한강 근처에 살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강 잔디밭에 나갈 수 있지만, 반디를 마음껏 풀어주기는 어렵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발이 폭신한 곳을 걷게 해줄 수 있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
반디는 이제 사람 나이로 치면 중년에 접어들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건강 관리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에는 몸무게가 많이 늘어서 식사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고, 다행히 조금씩 체중이 줄고 있다.
어제 저녁에는 오랜만에 배달 음식을 시켜 아내와 소파에 앉아 먹고 있었다. 그때 반디가 발 근처로 다가왔다. 특유의 눈빛으로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결국 평소보다 세 배 가까이 간식을 줄 수밖에 없었다.
반디는 짖지 않고도 자신의 의사를 꽤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도 강렬한 침묵을 보여주는 것 역시 훌륭한 소통 전략이라는 사실을.
어릴 때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강아지와 함께 사는 일은 나에게 작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의 파편이 되었다.